11월, 2021의 게시물 표시

응접실 개관 페스티벌 ‘접착들’과 ‘제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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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접실은 개관 페스티벌로 ‘접착들과 제안들’을 연다. ‘프리-오픈: 접착들’(21.09.01-03)은 다양한 주체에게 이야기들을 제안하며, 텅 빈 공간에서 응‘접’하며 도‘착’하는 어떤 시간을 나누고자 한다. 이는 응접실에서 할 수 있는 것들과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제안이다. ‘제안들’ (21.09.15-30) 은 여러 매체와 장르에서 출발하는 예술의 여러 형식을 초대한다. 상영회, 강연, 전시, 공연, 토크 등의 형식은 움직임, 음악, 연극, 시각예술 등의 장르와 헐겁게 결합할 예정이다. 주최/주관: 오픽 설치 도움: 조경재 디자인: 홍유진 후원: 인천광역시, 인천문화재단

〈최수련: 표어연습 & 한글 세대를 위한 필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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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수련 작가의 이번 작업은 장소 특정적인 회화에 가깝다 . 윈도우에 마스킹펜 또는 마스킹액을 기초로 한 재료 배합에서 비롯한 필사 작업은 , 캔버스 대신에 장소 자체를 배경으로 한다 . 매체의 특성상 그리고 장소의 성격상 이 필사 작업은 소장되기보다 지워지는 걸 염두에 둔 작업이다 . 또한 바깥에서 작업함으로써 작업을 하는 작가는 관찰의 대상이 된다 . 따라서 일시적인 차원의 작업의 전개는 퍼포먼스의 성격을 띠게 된다 . 애초 작가의 아이디어를 들었을 때는 그라피티의 작업 역시 떠올렸지만 , 그 모습 자체가 드러난다는 점에서 , 그리고 여전히 미술관의 경계에 서 있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 한문과 영문 , 또는 한문과 한글의 이중 언어로 쓰인 문자에서 영문과 한글은 한자 아래에 쓰인 , 해석을 위한 한문의 부차적인 요소다 . 하지만 이는 온전한 해석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 주로 고전 서사의 귀신과 죽음이 등장하는 고어한 그 내용은 알 수 없는 시대와 시간에 대한 간극 자체를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 이는 한문에 대한 해석 불가능성으로 환원되는 듯하다 . 이러한 먼 시간과의 거리는 아득하게 느껴지는데 , 작가는 그 의미의 무한함과 그로부터의 미끄러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듯하다 . 물론 무한한 의미의 문자들은 조금 더 시간이 인과적 관계를 확인할 수도 있지 않을까 . 마지막으로 , 장소 특정적인 작업은 장소의 특정적 반응으로 연장되었는데 , 작가의 작업 중에 중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의 존재가 확인되는 것이었다 . 한문을 중국어로 읽는 사람들이 있었다 . 평소 알지 못했던 응접실의 동네의 다른 언어를 인지하게 된 것이다 . 개방된 공간의 특성에서 많은 사람과의 접촉이 생겨난다 . 그리고 뜻하지 않게 중국어가 접속되었다 , 외부 ( 경계 ) 에서의 발신을 통해 .  최수련 ,  〈 표어연습  &  한글 세대를 위한 필사 〉 편집 영상 → https://youtu.be/y6Ev5IBbZL8 최수련 , 〈 표어연습 & 한글 세대를

〈밥 앤 잭: 분투기〉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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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밥과 잭의 연습 모습이다.) (아래 사진들은 모두 밥 앤 잭 공연 이후의 사진들이다.)  밥 앤 잭은 베이스와 드럼, 보컬로 구성된 밴드로, 애초에 멜로디나 화음에서 다채롭고나 풍요롭지는 않다. 공연은 잠이 들어야 너를 볼 텐데, 간다-하, 나나나, 타부. 네 곡으로 이뤄졌다. 반복되는 연주에 보컬이 살짝 얹힌 ‘잠이 들어야 너를 볼 텐데’, ‘간다-하’ 두 곡에 이어 ‘나나나’는 가수 유승준의 동명의 곡을 김민관이 커버한 곡이다. 마지막 곡 ‘타부’는 전자 사운드에 맞춰 전수현과 김효진이 보컬을 맡는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계속 반복되는 델리스파이스의 ‘차우차우’라는 곡을 모티브로 삼은 ‘간다-하’는 “우리는 ---로/에 간다”가 무한 반복 가능한 곡이다. 빈칸에는 자기가 가고 싶은 어디든 집어넣을 수 있으며, 관객의 참여 역시 유도할 수 있다. ‘잠이 들어야 너를 볼 텐데’는 “잠이 들어야 너를 볼 텐데 / 너를 보려고 계속 잤다”가 계속 반복되는 곡이다. ‘잠이 들어야 너를 기억할 텐데’라는 김민관의 곡이 모티브가 돼 이를 전수현이 잠이 들지 않는 화자의 우울을 잠드는 것으로 처리해, 곡의 우울을 농담으로 상쇄했다. ‘나나나’는 유남규와 김택수의 1989년 경기 영상에 ‘나나나’의 노래방 반주를 얹어 만든 뮤직비디오를 배경으로 튼다. 곡 초반에는 유남규의 탁구 동작이 일부 응용되기도 한다. “밥과 잭은 영화를 봤어”로 시작하는 ‘타부’는 동명의 영화인 미구엘 고미쉬의 〈타부〉의 내용을 밥과 잭이 서로 간에 전달하며 생긴 영화의 오해라는 우정과 소통의 간극을 노래로 승화시켰다. “악어 입속에 네 머리, 눈, 코, 입...”와 같은 대사들이 반복되며, 힙합풍의 곡이다. 가사를 중국어로 번역하는 부분들도 가미되어 있다.  밥과 잭은 신생 밴드로, 오합지졸 밴드이기도 하다. 아마도 각자의 음악적 흥미가 이들의 음악적 신선함보다 클 듯하다. 하지만 첫 번째 공연에서 관객 반응은 꽤 뜨거웠다. 어떤 잠재성은 모두 음악적 성향도 취미도 주로 다루는

〈박유라: 응접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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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사진은 모두 〈응접실〉 사전 답사 및 리서치에서 찍은 사진이다.) 박유라 안무가는 처음 장소를 탐색하러 와서 삼면이 창인 응접실 공간을 바깥에서 보는 시점을 고안하며 작업을 시작했다 . 응접실 맞은편 언덕의 계단에 앉아 공간을 한참 들여다보던 시점은 실제 퍼포먼스에서 관객의 시점으로 이양되었다 . 응접실 건물의 옥상에서 계단에 앉은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다 건물을 나와 건물을 길의 단위로 확장해 뱅뱅 돈다 . 따라서 안무가는 어느 순간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는 등장 · 퇴장을 반복하게 된다 . 관객은 이를 지켜보기도 하고 주의가 흐트러지기도 한다 . 보이지 않은 시간은 보이지 않는 것과 감응하는가 . 박유라는 하염없는 돎을 통해 이전의 시간과 이후의 시간의 계열을 만든다 .   이후 응접실에 들어간 박유라는 인스타 라이브로 공간을 소개한다 . 장소 특정적으로 이 공간을 누비며 공간의 높이와 폭을 비롯한 건축적 특징 , 시설의 활용 가능성을 타진한다 . 현장의 관객은 이를 실제 들을 수 없고 , 새로운 관객이 유입되었다 . 동시에 인스타 라이브 방송을 알려주는 주차 표지판 위의 표지를 통해 , 곧 이 표지판을 현장 관객의 시선에 들어오도록 바깥에 둠으로써 관객은 현장에서 박유라를 보며 , 인스타 라이브를 켜기 시작한다 . 반면 온라인 관객은 현장 관객의 시선을 획득할 수는 없다 . 곧 현장의 관객은 온라인 관객과 똑같은 화면을 공유하지만 , 자리에 정박된 채 박유라의 현장에 대한 보족 개념으로 스크린을 더한다 . 이는 유리창 사이의 나무 데크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 시각에 대한 부분도 있지만 , 무엇보다 청각에 대한 부분이다 .   제한적 관람의 부분은 극장의 문법을 야외로 확장한 데 있다 ― 관객은 자리를 미처 떠날 수 있는지조차 질문하지 못한다 . 그리고 또한 박유라의 응접실의 전유에 있다 . 박유라의 인스타 라이브는 현장의 관객을 떠나 또는 그와 상관없이 그의 사적 공간을 구성함을 의미한다 . 이를 인지하는 관객은 응접실을 지나가며 이를 쳐다보

〈앤드씨어터: 제작기〉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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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드씨어터의 전윤환 연출을 초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 앤드씨어터 (2008~) 는 아날로그 ‘ 와 ’ 디지털을 아우르는 이름처럼 이머시브 시어터 , 장소 특정적 연극 , 뉴다큐멘터리 연극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연극의 형식을 실험해 왔다 . 또한 한국근대문학극장같이 문학을 각색하는 작업도 한편으로 꾸준히 진행해 왔고 , 최근 〈 유원 〉 으로도 이어졌다 . 인천에서의 작업이라는 특징도 있다 . 가장 중요한 원칙은 개인의 이야기가 거대 서사를 이룰 수도 있고 넘어설 수도 있다는 이념 아래 , 개인의 이야기를 발화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 이는 개인의 특정하고 구체적인 이야기가 거대담론의 역사에서 이야기되지 않는 부분을 이야기할 수 있음을 의미하고 , 또 극단의 작업 방식과도 연관된다 . 곧 극단 한 명 , 한 명이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가는 작업 과정으로 공동 창작이 이뤄진다 .   기반 없음은 역설적으로 작업의 반동적 조건이 되어 왔다 . 동문으로 시작돼 서울이 아닌 인천에서 자리 잡기까지 극단에서의 또 서울에서의 기회 없음이 계기가 되었다 . 이어 작업들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고 , 이는 경험이 쌓여 나가며 현장과 관객을 생생하게 감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 터무늬 있는 연극은 지역 고유의 지문 , 무늬를 찾기 위한 시리즈 작업으로 , 인천 리서치를 통해 관광 도시나 행정의 개념이 아닌 인천의 오랜 역사적 자산과 지역민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지역을 “ 예술가의 시선으로 재맥락화 ” 했다 . 또한 지역은 작업이 발표되는 지역의 관객에게 가닿을 수 있는 이야기라는 의미에서 관객의 구체성을 이야기하는 부분도 있다 .   중후반에는 작업 과정과 방식에 대한 부분이 주로 이야기되었다 . 리서치로부터 작업이 보통 시작되고 , 이 리서치가 주제와 자신의 조건과 연결되는 지점 역시 중요하다 . 또한 이러한 리서치로부터 시작된 과정에서는 각자의 리서치와 이를 발전시킨 이야기가 서로 경합하고 갈등하며 종합되는 시간도 필요해진다 . 그리고 다큐멘

〈신명의 분류학 - 바람과 물 그리고 대간〉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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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무비평가라는 명칭에서 ‘ 안무 ’ 는 무용의 창작 방식으로 국한되지는 않는다 . 이는 무용을 비롯한 다른 장르에 대한 보기의 관점을 창안함을 선언적으로 드러낸다 .   강연은 크게 네 개의 신명을 다룬다 . 높새바람 신명 , 메나리조 신명 , 몽금포 신명 , 능마바람 신명이 그것이다 . 먼저 신경준의 ‘ 여지고 ’ 에서 “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 ” 를 대전제로 내세운다 . 곧 산과 강이 서로 영향을 미치는 관계에서 시작해 , 바람과 신 / 무당의 관계 , 동물 되기 , 축의 시대 , 하이누웰레 신화 , 배의 문화 , 바리데기굿 등 다양한 이야기와 개념 , 참조 자료 등이 종횡무진한다 .   하이누웰레 신화 , 배의 문화 , 바리데기굿은 모두 연결되는 수평적 인식 구조 아래 있다 . 이는 수직적 문화인 말의 문화와 반대적 개념으로서 도식을 이룬다 . 이러한 도식은 결과적으로 삶에 대한 다른 감각 , 다른 세계로부터의 감각을 전해준다 . 곧 인식 구조가 문화에 따라 다른 것이라면 , 우리의 인식 구조 역시 고착되어 있음을 , 나아가 변경될 수 있음을 상정한다 .   하늬바람에서 “ 늬 ” 는 무늬를 뜻하는데 , “ 늬 ” 가 들어간 몇몇 단어들을 찾아보는 것도 흥미롭다 . 무늬는 무당 무 자와 늬의 만남이다 . 언어의 시원적 감각을 들여다보는 것 역시 김남수 강연의 특징이다 . 그러한 언어에는 힘이 실린다 . 크게 썰고 , 넓게 꿰는 3 시간에 육박하는 강연은 일종의 퍼포먼스에 가깝다 . 가령 미리 가져온 책을 나누거나 돌을 보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그렇다 . 이런 관법의 제시는 관념적인 것만이 아닌 것에 관심을 둔다기보다 , 어쩌면 물질적인 것에 관념적인 것이 현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 김남수, 〈신명의 분류학 - 바람과 물 그리고 대간〉 편집 영상 보기 → https://www.youtube.com/watch?v=YGu4YeKDcH8   김남수 , 〈 신명의 분류학 - 바람과 물 그리고 대

〈코어 인터루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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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어 인터루드 〉 는 〈 코어 (core) 〉 라는 권희수 작가의 한 작업을 관람하는 프로젝트였다 . “ 인터루드 (interlude)”, 곧 막간 ( 극의 중간 ) 이라고도 번역되는 개념이 그 뒤에 붙은 것은 , 이 작업이 작가의 지난 아마도예술공간에서의 제 8 회 아마도애뉴얼날레 ― 목하진행중에 참여했던 사운드 인스톨레이션 〈 코어 〉 를 새롭게 편집한 작품이며 , 이후 11 월에 있을 작가의 또 다른 퍼포먼스에 사용될 음악을 예비하는 어떤 중간의 작업이다 . 여기서 중간은 발전의 양상이 아닌 변화를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실천에서 온다 . 지난 〈 코어 〉 와 다른 점은 , 정해진 시간에 한정된 인원 , 곧 한 번에 두 명씩만 관람할 수 있는 , 일종의 극장의 문법을 적용했다는 것이다 .  네 번의 프로그램에서 사운드의 규격은 모두 같았고 , 이는 작업된 사운드를 튼다는 점에서 여전히 사운드 인스톨레이션이었지만 , 작가가 그 시작을 알려주고 시작과 끝을 열고 닫는다는 점에서 퍼포먼스적 요소가 작업을 둘러싸고 있었다 . 구체적으로 블라인드와 커튼이 이중으로 삼면의 유리창을 방어하는 공간에서 둘 모두를 걷은 빛이 드는 공간을 온열 안대를 끼고 관객이 누운 가운데 , 다시 블라인드와 커튼으로 이중 잠금하고 , 사운드가 끝나기 전 다시 이를 원 상태로 복구해 놓는다 . 커튼과 블라인드를 치는 소리는 사운드의 시작과 끝에 섞여든다 . 하지만 그 끝의 소음은 관람객이 인지하지 못하는 소리로 자리했다 .  전시 이후 작가가 준비한 말차와 보이차 두 종류의 차를 나누어 마시며 이 시간이 작업에 대한 피드백으로 자연스레 연장된 것은 , ‘ 응접실 ’ 의 정신에 상응하는 요소가 작가의 아이디어로 가미된 것으로 , 관객의 시간이 작가와 닿는 새로운 시간이 생겨났다는 점에서 전시 관람과의 어떤 차이를 드러낸다 . 물론 이러한 요소가 가능한 것은 하루라는 시간으로 프로그램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   〈 코어 인터루드 〉 는 작품 자체의 중간자적인 존재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