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련: 표어연습 & 한글 세대를 위한 필사〉 리뷰









 최수련 작가의 이번 작업은 장소 특정적인 회화에 가깝다. 윈도우에 마스킹펜 또는 마스킹액을 기초로 한 재료 배합에서 비롯한 필사 작업은, 캔버스 대신에 장소 자체를 배경으로 한다. 매체의 특성상 그리고 장소의 성격상 이 필사 작업은 소장되기보다 지워지는 걸 염두에 둔 작업이다. 또한 바깥에서 작업함으로써 작업을 하는 작가는 관찰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일시적인 차원의 작업의 전개는 퍼포먼스의 성격을 띠게 된다. 애초 작가의 아이디어를 들었을 때는 그라피티의 작업 역시 떠올렸지만, 그 모습 자체가 드러난다는 점에서, 그리고 여전히 미술관의 경계에 서 있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한문과 영문, 또는 한문과 한글의 이중 언어로 쓰인 문자에서 영문과 한글은 한자 아래에 쓰인, 해석을 위한 한문의 부차적인 요소다. 하지만 이는 온전한 해석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주로 고전 서사의 귀신과 죽음이 등장하는 고어한 그 내용은 알 수 없는 시대와 시간에 대한 간극 자체를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한문에 대한 해석 불가능성으로 환원되는 듯하다. 이러한 먼 시간과의 거리는 아득하게 느껴지는데, 작가는 그 의미의 무한함과 그로부터의 미끄러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듯하다. 물론 무한한 의미의 문자들은 조금 더 시간이 인과적 관계를 확인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장소 특정적인 작업은 장소의 특정적 반응으로 연장되었는데, 작가의 작업 중에 중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의 존재가 확인되는 것이었다. 한문을 중국어로 읽는 사람들이 있었다. 평소 알지 못했던 응접실의 동네의 다른 언어를 인지하게 된 것이다. 개방된 공간의 특성에서 많은 사람과의 접촉이 생겨난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중국어가 접속되었다, 외부(경계)에서의 발신을 통해

최수련표어연습 한글 세대를 위한 필사〉 편집 영상https://youtu.be/y6Ev5IBbZL8


최수련, 표어연습 & 한글 세대를 위한 필사

최수련 작가는 전시 당일에 응접실 윈도우에 드로잉을 선보인다. 마스킹 펜으로 필사하고 그려 나가는 텍스트들과 표어, 곧 전시장 바깥의 경계인 윈도우에 새겨지는 그림은, 전시장의 제도적 문법을 벗어나 즉흥적으로 장소를 찾고 실험하며, 이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연하게 마주하게 되는 그래피티 아트의 속성을 닮아 있다. 작가는 투명한 캔버스 위에서 작업 과정을 노출하고 장소를 변환하는데, 여기서 작업과 장소, 수행은 하나의 통합된 계열체를 이룬다. 작업 이후, 시간에 의해 자연스럽게 풍화되는 글자들은 가변적 전시와 그 기간을 상정한다.

일시: 2021930일 목요일 오후 7시 오프닝, 오후 전시 드로잉

장소: 응접실(인천광역시 중구 율목로30번길 1, 1)

주최/주관: 오픽

공간 자문/설치: 조경재

디자인: 홍유진

후원: 인천광역시, 인천문화재단

*대략 4~6시 사이에 작가의 드로잉이 진행될 예정이며, 오프닝 날에는 작가가 필사 교본 인쇄한 것을 나눌 예정이다.

최수련 작가는 동북아시아의 고전적 이미지가 동시대에 재현되는 양상을 관심 있게 지켜보며 그 과정에서 눈에 띄는 것들을 회화로 옮기고 있다. 특히 주류의 미감으로는 비하되기 쉬운 것들을 재발견하거나 한국과 중국의 고전 극영화에서 수집한 클리셰 장면들을 소재로 작업해오며 현실에서는 무용한 소위 동양풍이미지의 효용을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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